카테고리 없음 / / 2023. 4. 21. 12:17

<니체극장>, 정신 붕괴, 광기들, 부활한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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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주요 저서의 핵심들을 한 권으로 접할 수있다, 2016출판작.

정신붕괴_나의 의견


저자 고명섭의 호기심, 그는 인간의 정신, 내면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사유의 발원이 되는 곳, 그 뿌리를 만지고 싶은 강한 욕구와 욕망을 책에 쓴다고 한다. 독자 또한 그 강한 욕구와 욕망으로 책을 본다. 그렇게 이끌림으로 닿은 곳 정신붕괴다. 서래가 바닷게처럼 스스로 고운 모래를 깊이 파내어 즐거워하는 듯 평안한 듯 흐느끼는 듯 그리운 듯 오묘한 표정으로 모래구덩이에 앉아 구덩이 밖 표면에서 흘러넘쳐 들어오는 바닷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면이 동시에 떠 오른다. 내 두뇌가 그 뉴런의 시냅스를 작동케 했다. 세계관과 세계관? 한 인간이 거대한 세계의 집합체가 돼버렸다. 스스로는 그 벽을 깰 수 없어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어버리는 걸까. 니체는 초인이 되어라, 그전에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했는데 자기라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온전한 인간으로의 성향이 동물의 본성과 구별이 되는 것일까? 살기 힘들어하는 인간들이 억지스럽게 동물들을 격하시키면서 스스로는 우월하다 괜찮다. 탁월한 존재다 하며 다른 존재를 깎아내리면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서래가 남주에게 다가갈 때 한발 멀어지고 이제 사라질 결심, 그래 완전히 붕괴되어 소멸될 때 다시 찾는다. 그 찾음과 붕괴의 지점 그 블랙홀 같은 끌림의 아우성들이 삶을 힘들게 한다. 여기 고통을 가장 실감 나게 느끼고 그 질곡의 히스토리를 포착한 니체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사실 니체의 원저를 보길 권하나 같은 이유로 니체의 세계관을 접하기가 너무 뜨겁다. 세상을 타인들이, 감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그 끝에 선 사람만이 니체의 인생의 항해를 통해 그가 말해주는 시각을 따라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닻을 내릴 것이다.



거의 모든 곳에서 새로운 사상에 길을 열어주면서, 존중되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은 광기다....... 어떤 윤리의 질곡을 부수면서 새로운 법을 부여하려는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에 사로잡혔던 저 탁월한 모든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실제로 미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을 미치게 하거나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아침놀>, 제1부, 14절._니체극장 중.

 

서래의 모래 무지, 헤어질 결심, 2022. 서로의 세계관 극장을 닫는것, 상대를 향해 열렸던 마음이 끝나는 순간. 한 세계가 붕괴한다.

니체의 광기들

고명섭 저 / 김영사

김영사 니체극장 (양장) + 미니수첩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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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의 히스테리 같은 스토리들을 민감하게 느끼는 뇌를 지닌 니체, 무엇이 그토록 삶을 무겁게 했을 까. 그의 일생에서 광기의 지점을 저자는 '정신의 붕괴'라는 마지막 장에 배치했다. 이 장에서 먼저 니체가 채찍에 맞는 말을 쓸어안고 울다 쓰러진 일화를 소개한다. 그러한 행동을 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1869년 니체극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에 관한 문헌을 강의하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B.C. 560?-470)가 선배 피타고라스의 어떤 행위를 기록한 니체의 공책을 소개한다. "채찍을 치우라. 그대가 괴롭히는 것은 내 친구의 혼이다."_길 가다 개 한 마리가 얻어맞는 것을 본 크세노파네스가 동정심에 사로잡혀 한 말. 피타고라스는 영혼의 윤회설을 믿었다. 저자는 니체가 파울 레와 루 살로메와 말과 마부(살로메)의 역할을 설정하며 찍은 사진의 기묘함에 주목한다. 나중에 살로메가 니체를 떠날 때의 심리적 대상이 마부 역할을 할 살로메가 니체를 끔찍하게 채찍질한 꼴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까. 그때 새겨진 트라우마가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느닷없이 불거져 나온 것이라 저자는 추축해 본다. 어쩌면 니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라고 서명한 편지를 의식을 회복한 후 사람들에게 보낸 것을 보았을 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에 연관시킨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잡혀 로마 총독에게 넘겨진 예수는 로마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한 뒤 십자가에 못 박힌다.) 니체가 그리 비판했던 동정심이 니체가 광기적 행위의 원인이었을까? 니체가 그렇게 강조하듯이 동정의 부작용을 논설한 것이 타인에게 때론 의도치 않은 선물처럼 다가오지만 그 투영이 자신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너무나 인간적인 취약함으로 겪은 일들에서 그 사상의 단초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광장에서 쓰러진 이후 의식의 통제를 잃은 니체는 과대망상적이라 할 정도로 자신을 강하여 표현한다. <이 사람을 보라>를 완성한 뒤 출판업자인 톤스탄틴 게오르크 나우만에 보낸 편지 "차라투스트라 한 권만으로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유사 이래 가장 획기적인 책입니다." 또 높은 신분에 대한 니체의 집착, 니체가 메타 폰 잘리스에게 쓴 편지 글 "토리노에서 나는 눈빛만으로도 마치 귀족과도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고 음식을 차려내는 행동을 극도로 정중한 태도로 합니다. 내가 큰 상점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금세 바뀝니다." 1889년 12월 29일 그 밀도가 더 커진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벌써 유럽에는 니체의 언어로 뒤덮혔다. 니체는 마치 세계대전을 예견한 것같이 페터 가스트에게 쓴 편지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를 모두 회수하고 싶어 그 책이 20-30년에 걸친 세계사적 위기가 끝난 뒤에 출간될 것이 적절하다고 썼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니체 <차라투스트라은 이렇게 말했다>를 15만부나 인쇄해 전선에 향하는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호전적 열기가 공격적 의지를 부추기게 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니체 전집을 무솔리니(1883-1945)에게 선물하며 '권력에의 의지'를 곱씹기를 바랐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1년 후 다시 2차 세계대전이 사람들에게 비극을 몰고 왔다. 니체의 말년 이성을 잃은 광기의 시선들로 그와 연결된 인간관계를 끊을 수 있었다. 니체는 1988년 가을 이후 경조증 상태에서 조광증에 가까운 상태로 이행했다. 짧은 우울증 시기를 거쳐 무한한 자신감에 찬 열광적인 조증 상태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친구 로데가 자신이 좋아했던 프랑스 비평가 이폴리트 텐에 대한 불손한 말을 했다는 것으로 절교를 선언했다. (1877. 5. 23. 편지) 1888년 가을 지휘자 한스 폰 뵐로와 관계를 끊고 이후 1888. 10. 9. 발비다 폰 마이젠부크 차례였다. 니체는 말비다가 이상주의자였기에 초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특히 잔인함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단언했다. "나에게 거슬리지 않은 인물 유형은 예전의 이상적인 우상과는 정반대의 유형인데, 그것은 예수 유형보다는 체사레 보르자 유형가 100배나 더 비슷합니다." 1888. 10. 20. 십자가에 못 박힌 희생적 사랑의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 예수와 무자비하고 잔인한 권력 의지의 화신의 보르자와 함께 뒤엉켜 있는 니체의 상태를 그 시기의 편지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_766P. 차라투스트라처럼 산속 고행을 마치고 인간사에 내려와 무매한 대중의 악취에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분개로 깊은 심연의 잔인성이 올라왔을까? 선한 마음에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지킬박사가 내면의 하이드를 깨우는 것 같다. 인간은 혼자 남기가 그토록 힘든 존재인 것 같다. 신이 될 수 없는 초인으로 남는다는 것은 고독한 비극일까. 더 더 파고 들어가면 서래나 니체처럼 절연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든, 또는 깊게 한 인연 속 관계한 것들과 니체는 그렇게 관계밖으로 나가 초인으로 남고 싶었나 보다.

 
 
 

광기와 트라우마의 경계


트라우마는 상처로 얼룩진 자아를 잃은 사람에게 불쑥, 순간, 난데없이, 아무때나, 갑작스레  어두운 동굴이나 늪에 빠지듯이 어떤 덫에 발목이 물린 채 허우적거려 의식을 잃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게 더 짧게 반복적으로 자주 그리고 어느새  광기만 보이는 것이지, 니체는 광인이 아니다.  니체의 도 넘는 자화자찬, 저자가 말하는 니체의 스타일을 보자. "나는 탁월한 반당나귀다. 그래서 나는 세계사적 괴물이다. 그리스 말로는, 아니 비단 그리스 말로만이 아니다. 나는 안티크리스트다. "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2절. _ 768P. 니체는 자신의 오만을 알고 그의 오만이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것이라고 언명한다.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덕에 사유가 심하게 흔들리는 중에서 전복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보다도 더한 악마여야 한 것... 니체는 독일의 빌헬름 2세를 총살하고 싶다고 말한다. 니체는 한번도 실제 삶에서 춤추고 노래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니체가 스트린드베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니체 카이사르'라고 서명한 이 마지막 시기에 니체는 인도의 시바 신처럼 춤을 췄다고 당시 하숙집 여주인이 '교수님'방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열쇠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며칠 뒤 니체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쓰러진다. 이 시기의 편지들을 저자는 니체의 정신이 현실 원칙과 자기의식으로 억눌렀던 내적인 세계가 드러난 것으로 판단한다. 니체의 무의식적 욕망의 심층에서 니체는 '카이사르'였고 '황제'였고 세계의 '지배자'였다. 그리고 이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이자 디오니소스로 드러낸다.  니체의 정신은 수많은 역사 속 인물 그리고 마음속 깊이 품은 연인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실생활에서는 표현하지 못하고 품었던 것을 인생말년에 후회없이 분출한 게 아닐까. 니체가 바그너와 절교한 뒤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에게 쓴 편지, "바그너 부인(코지마)과 얼마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내가 더는 누릴 수 없게 된 기쁨 중에 하나가 그녀와의 대화였습니다.!: 1877. 7. 1. 예나의 오토 빈스방거박사의 정신 병원에 수용된 니체가 "나를 여기 데려온 것은 내 아내 코지마다."한 것을 저자는 니체 자신을 디오니소스라고 칭했을 때, 그것은 재생과 부활의 신이 보여주는 영원한 생명력이라는 의미와 함께 코지마-아드리아드네의 남편이라는 구체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사랑에 대한 삼각관계를 친구들이 코지마와 바그너 관계를 코지마와 니체의 관계로 옮겨 바그너에게 칭했던 디오니소스를 자신에게 빗대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니체의 광기는 친구 오버베크가 하숙집을 찾갔을 때 놀라운 변화는 금욕주의의 증발이었다. 782p. 정신 퇴행을 일으킨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니체는 먹을 것과 여자들을 구해달라며 계속 울부짖어, 병원 의사들은 그에게 조광증의 특징이 관찰된다고 적었다. 🥵 광기는 니체의 품위, 격조, 신중함을 모조리 앗아가 버렸다.
오버베크가 니체를 정신병원에 데려갔을 때 의사는 "병에 대한 의식이 없고, 이상할 정도로 유쾌하고 의기양양함.... 아무나 포옹하고 키스하며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것을 가장 즐겼다고 진술함."을, '진행성 마비'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1890년 1월에는 가스트, 2월에는 오버베크도 그를 방문하고 등골이 오싹한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말한다.  "끔찍하게도, 니체가 미친 척하면서 이렇게 생이 마감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저자는 니체가 미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광기 속으로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라고 판단한다. 니체가 일찍이 광기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음을 <아침놀>, 제1부, 14절에서 찾았다. "어떤 윤리의 질곡을 부수면서 새로운 법을 부여하려는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에 사로잡혔던 저 탁월한 모든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실제로 미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을 미치게 하거나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_7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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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8월 25일 눈을 감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부활한 니체


니체가 죽고 나서야 니체의 사상은 누구라도 자신의 사상을 끄집어낼 수 있어서 극좌에서 국우까지 드럽게 추종자를 만들었다. 니체는 나치의 핵심 교의를 부정한 사람이긴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서양철학사>를 집필한 영국의 철학자 러셀(1872-1970)은 니체 철학을 리어왕의 외친 말로 간단히 표현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이 땅에 공포를 불러오리라."
니체는 20세기 인문, 사회과학 영역에서 니체 철학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20세기 새로운 심리학의 거대한 원석 광산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자서전적 서술인 <나의 이력서>에서 니체가 자주정신분석이 어렵게 이룩한 결과와 놀랍게 일치했기에 니체의 철학을 "오랫동안 피했다"로 고백했다. 또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카를 융(1875-1962)은 20대에 니체의 철학을 만나 '그림자'라는 용어를 그의 심리학에 중요한 개념('무의식에 억압된, 자아의 어두운 측면'='그림자')을 이끄는데 중요한 통찰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마침대 니체를 닮게 될 것이 두려워 니체에 저항했지만 결국 호기심에 니체의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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