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4. 18. 16:38

<세계사>, 동아시아 문화의 뿌리 중국, 봉건제, 명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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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드 마이 저, 이화북스_학생들 맥잡는데 좋은 책

저자는 1949년 독일 출생으로 뒤늦게 교육을 향한 열정으로 교사가 되었다. 거의 모든 책이 청소년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고 하니, 56가지 이야기 중 동아시아 문화의 뿌리인 중국 등 여타의 주제를 선별하여 살펴본다.

목차

    동아시아 문화의 뿌리_중국


    김태환 옮김 / 이화북스

     

    세계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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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평화로운 때가 거의 없었다. 중국인들은 신과 조상 숭배에 진심이었다. 드물게는 인간을 제물로 바칠정도였다. 공자의 가르침은 한나라(기원전 206-서기 220)에 가서야 성인처럼 숭배되었다.  성선설을 바탕으로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의 모범이 되며, 제후들은 백성들에게 유덕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공자에게서 가족은  '인간성의 뿌리'를 이루는 것이다. _40p.

    봉건제


    수많은 대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다. 정복 전쟁을 통해 이룩한 거대한 제국은 어떻게 유지 관리하나냐가 더 중요한 일이다. 이집트 파라오에서부터 로마의 황제에 이르기까지 통치자들은 아주 다양한 방안들을 시도했다.  샤를마뉴 대제는 게르만 전통을 토대로 중세 전체의 방양을 결정할 지배 구조와 사회 형태를 창조해 낸다.  효율적 행정을 위해 황제 아래 '가신'이라는 충성스러운 신하를 두고 제국에 봉사하면 보상을 제공했다. 가신들은 그 대가로 금전이 아닌 토지와 그 토지에 딸린 농민들을 받게 되었다. '봉토'는 일시적으로 황제에게서 빌린 땅이었다. 가신들은 또 다른 가신에게 봉토를 나누어 관리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 봉건 영주나 가신의 자격 조건과 의무, 권리를 확정하는 봉토에 관한 규정을 만든다.  모두 서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이다. 일부 동프랑크 제국에서는 가신이 죽고서 장자에게 세습하는 관습이 확장되자 황제의 처분권은 유명무실해졌다. 이것이 제국 내의 세속 영주와 교회 주교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독일 제국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국가발전을 가져왔지만 이 때문에 '지체된 국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유럽 대부분의 중세질서를 이루는 것은 피라미드 형태의 '신분들'이었다. 황제 아래 제국 제후들이 봉토를 받고 그 밖에 귀족, 주교, 수도원장과 함께 사회의 최상 계층을 형성했다.  그다음이 기사, 관리, 부유한 시민, 수공업자였다. 농노와 예농이 맨 아래를 차지했다. 농노는 이주의 자유가 있었으나 예농은 달랐다. 노예처럼 물건취급되어 짐승과 다름없었다. 농민은 영주 소유의 들판이나 밭, 산림지에서 일하면서 수확의 일부와 생산물을 정기적으로 바치고 부역의 의무도 있었다. 이들 아이들은 딸은 열세 살, 아들은 열여덟 살에서 스무 살 사이 혼인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과 무지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갔다.  

    봉건제시내 농민들의 일상_76p.

     

    영국의 명예혁명_근대적 헌법


    영국은 1215년 이후로는 절대 군주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은 제후와 주교, 귀족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귀족 회의가 감시하고 중요한 사안은 왕에게 조언을 제공하는 협의회로 발전한다. 14세기 이후 명망 있는 시민과 지방 기사들도 의회에 참여하며 양원으로 구성된 영국 의회의 기초가 마련된다.
    17세기 초까지는 왕과 여왕은 의회에 협조적이었다. 1625년에 찰스 1세 때 스스로 신의 선택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면서, 왕과 의회 사이의 갈등으로 내전이 시작된다.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은 청교도주의자로 의회군을 이끌어 두 번의 승리를 거둔다. 영국은 크롬웰을 정부 수뇌로 하여 공화정의 시대를 맞이한다. 1653년 종신직위인 호국경의 자리에 오른 뒤 군대 힘을 빌려 나라를 다스린다. 영국인들은 크롬웰의 공화정에서 다시 왕정 복귀를 희망했다. 1660년 5 월 새 국왕 찰스 2세가 즉위했다. 국왕이 가톨릭교도를 관직에 중용하자, 의회는 법률로 가톨릭교도를 공직에서 배제하며 왕에게 저항했다.  이때 찰스의 딸 메리의 남편, 네덜란드의 오라녜가 윌리엄 공이 영국 의회의 왕귀 약속권을 받음으로써 피 한방을 흘리지 않은  '명예혁명'을 이룩했다. 그는 즉위 전에 '권리장전'이라는 문서에 서명을 했는데 영국의 의회와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영국에서는 이처럼 의회가 정치의 주도권을 쟁취하고 근대적인 헌범의 기초를 다졌다.

    권리장전 내용,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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